그들은 언제나 크레도를 품고 다닌다, 리츠-칼튼 호텔(Ritz-Carlton Hotel)

by 에디터 아이콘 BEIGE 2020/09/17 2,086 views

 

(출처: Forbes.com)


호텔 브랜드 이야기 2편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화려한 호텔로 정하고 싶었다. 단순히 럭셔리 하고 좋은 곳 말고 그들만의 역사와 전통, 아우라가 있는 곳 말이다. 다행히 고민은 길지 않았다. 호텔족 100명이면 99명은 동의할 만한 곳을 알았으니. 바로 리츠-칼튼(The Ritz-Carlton)이다. 워낙 화려하고 격조가 있어 어떤 이들에겐 사치스럽고, 유난 떠는 곳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호텔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욱 로망 같은 곳이다.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Ritzy(호화로운, 화려한) 라는 영단어 또한 리츠-칼튼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면 그 클래스가 증명됐겠지? 꼬마 에디터 시절, 홍콩에서 인생 첫 Ritzy를 경험했던 그 날의 충격과 설렘을 떠올리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호텔리어의 왕, 꿈의 호텔을 짓다



(1888년 세자르 리츠와 그의 아내, 출처: Wikipedia)


요리사가 차린 식당, 피아니스트가 연 학원. 이런 건 꽤 봤어도 호텔은? 호텔은 스케일이 큰 사업이라 전문 사업가가 막대한 투자 비용과 노하우로 창업하고, 대대손손 CEO 자리를 물려주며 조금씩 키워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리츠-칼튼은 조금 달랐다. 첫 호텔 창립 이후 약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러 사업가의 손을 거친 덕에 지금의 글로벌 브랜드(31개국, 약 100개의 호텔·리조트 보유)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리츠-칼튼이 되기까지 많은 사람의 공이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빼놓지 말아야 할 사람이 세자르 리츠(César Ritz)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스위스 태생의 호텔리어 출신으로 현재까지도 ‘호텔리어의 왕’으로 불릴 만큼 업계에선 전설적인 인물이다. 리츠-칼튼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리츠 파리와 칼튼 런던 호텔을 지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호텔리어에서 두 호텔의 창립자가 될 수 있었을까? 

 

(출처: Unsplash ; @superandrew)


본 투 비 호텔리어처럼 보였던 그이지만, 처음부터 호텔리어를 꿈꾸던 건 아니었다. 세자르 리츠는 스위스 발레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 우연한 기회로 호텔의 소믈리에 견습생으로 지내게 된다. 하지만 1867년 한 사건으로 해고를 당한 뒤(견습생으로 지내던 호텔의 후원자에게 ‘이 호텔 사업은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라고 악담을 퍼부어서라는 말이 있음…) 파리로 가 레스토랑 웨이터, 호텔 매니저 생활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호텔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될 사람은 된다고 했던가. 섬세하고 센스 있는 성품 덕에 그는 어느새 여러 유명 호텔에 스카우트되는 베테랑 호텔리어로 자리 잡게 된다. 


(산업혁명으로 성장한 공업, 출처: History.com)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신흥세력들, 출처: Wikimedia)


자 여기서부터 메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지금껏 호텔리어로 지내던 그가 자신만의 호텔을 꿈꾸게 된 계기다. 1873년 세자르 리츠는 당시 왕세자였던 에드워드 7세를 고객으로 모시게 되는데 이때 왕가의 서비스를 호텔에 접목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그리곤 생각했다 ‘꼭 왕/귀족 신분이 아니어도 그들처럼 왕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호텔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범한 농가에서 자란 평민 출신이었던 세자르 리츠는 이런 욕망이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특히 당시엔 18C 산업혁명을 지내며 새롭게 떠오른 신흥 부자들이 많았기에 돈만 내면 귀족 대접해주는 곳에 솔깃할 게 분명했다. 


(리츠 파리, 출처: Wikimedia)


(사교장소로 인기 있었던 레스토랑, 출처: 리츠-파리 공식 홈페이지)


1888년, 그는 남미 부호 알프레드 베이트, 유명 요리사였던 오귀스트 에스코리에와 함께 본격적으로 호텔업을 뛰어든다. 그로부터 약 8년 동안 크고 작은 호텔을 운영하며 노하우를 키우다 1896년 파리 방돔광장에 있는 호화 맨션을 구입, 2년 뒤인 1898년 초호화 호텔인 ‘리츠 호텔 파리’를 개관한다. 여기가 바로 앞서 말했던 리츠-칼튼의 전신 호텔 중 한 곳으로, 오픈과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외관은 신분상승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파라다이스와 같았으며, 세계 최초로 호텔 객실 내에 욕실과 전화기, 붙박이장 등을 설치한 것도 파격적이었다. 지금도 유명한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도 이때 세자르 리츠가 리츠 파리의 운영 모토라고 설명하면서 세상에 처음 나왔다고 한다. 


*손님은 왕이다: 지금은 ‘직원이 손님을 무조건 왕처럼 모셔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세자르 리츠의 본래 의도엔 ‘평민들도 돈만 내면 언제나 왕/귀족과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신분제도 폐지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고 함.  


(칼튼 런던, 출처: Wikimedia)


(리츠-칼튼 보스턴, 출처: 보스턴공공도서관 소장용)


이듬해 1899년에는 런던에 칼튼 호텔을 개관(이곳 또한 리츠-칼튼 전신 호텔 중 하나). 연이어 성공을 거둔 뒤 1905년엔 그는 미국을 거점으로 ‘리츠-칼튼 매니지먼트 컴퍼니’를 설립해 활동을 이어 나갔으나 얼마 뒤 지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후 그의 아내가 회사를 물려받아 작게나마 운영을 지속해 나가던 중 1924년 미국 부동산 개발업자인 에드워드 N. 와이너가 리츠-칼튼의 상호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3년간의 끈질긴 설득 끝에 허가권을 받아낸 그는 1927년 보스턴에 한 호텔을 세우게 되는데 이게 바로 리츠-칼튼 보스턴. 공식적으로 리츠-칼튼 명칭이 합쳐진 첫 호텔이었다(하지만 그는 호텔만 열었을 뿐 회사를 설립한 건 아님).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했던가



(항상 북적였던 리츠-칼튼 보스턴, 출처: Archive.boston.com)

 

(세계경제대공황 당시, 출처: Wikipedia)


리츠-칼튼 보스턴은 리츠 파리와 칼튼 런던의 명성을 이어받아 미국인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미국은 ‘영국 본토에서 이민을 간 사람들이 지은 영토’라는 인식으로 인해 역사와 전통이 없는 나라로 비웃음을 사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선두에 서기는 했으나 히스토리가 짧은 나라의 국민이라는 건 그들에게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런 그들에게 리츠-칼튼 보스턴이 제공하는 격식 있는 유럽풍 서비스는 목마름을 채워 주기에 충분했다. 고급스러운 옷차림의 손님만이 호텔에 출입할 수 있었고, 우아한 식사예절은 필수였다(어찌나 격식을 차렸던지 당시 여성은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혼자 식사를 하거나 바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을 정도. 까다로운 복장 규정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음)


와이너는 보스턴점의 성공을 기반으로 필라델피아, 뉴욕시까지 호텔을 확장해 나갔지만 곧이어 닥친 세계 대공황(1929년)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1940~50년대에 걸쳐 필라델피아와 뉴욕 지점은 결국 문을 닫고 보스턴만이 살아남았다. 이후 와이너가 사망하면서 리츠-칼튼 보스턴 운영권은 블레이클리라는 사람에게 양도되었다가 1983년 윌리엄 존슨이 매입하게 되는데 이때 함께 설립한 회사 ‘리츠-칼튼 호텔 컴퍼니’가 오늘날의 리츠-칼튼 공식 브랜드다. 호텔 업계에서는 리츠-칼튼 브랜드의 시작점이 와이너때부터인지, 윌리엄때부터인지는 논란이 되기는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누가 됐던 간에 이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현 리츠-칼튼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호텔리어의 왕’ 세자르 리츠일 텐데:)

 

(출처: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공식 홈페이지)


어쨌든 최종 인수자가 윌리엄 존슨이 된 이후, 보스턴 지점을 중심으로 또다시 세력을 넓혀 가고 있던 리츠-칼튼 호텔.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했던가. 초호화 호텔이란 컨셉을 꾸준히 유지하며 버텨 온 덕에 1998년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에 인수돼 산하 브랜드로 들어가게 된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Marriott International, inc): 미국 메릴랜드주에 본사를 둔 글로벌 호텔 그룹으로, 총 30개의 유명 호텔 브랜드를 산하에 두고 있음. 보유하고 있는 호텔과 리조트는 132개국에 약 7,000개 이상. 이곳들에서 쓸 수 있는 메리어트 본보이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음.



미스틱 서비스의 매력, 헤어날 수 없을걸?



(과거의 호텔리어들, 출처: 리츠 파리 공식 홈페이지)


(출처: 리츠-칼튼 레지던스 공식 홈페이지)


여기까지가 리츠-칼튼 호텔이 어떤 이들의 손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는 리츠-칼튼 호텔만의 독특한 서비스에 대해 얘기할 차례다. 이전 편에서 다룬 ‘포시즌스 호텔 앤 리조트’ 그룹이 현대적인 호텔 서비스의 표준이라면 리츠-칼튼 호텔은 근대적인 매력을 지닌 호텔의 표준이다. (최근 들어 현대적인 시스템을 많이 도입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분야는 일단 포시즌스에게 양보하는 거로…)


리츠-칼튼 호텔의 서비스는 일명 ‘미스틱 서비스(Mystic Service)’로 불린다. 의미 그대로 모든 호텔리어가 신비주의자(Mystic) 컨셉 아래 고객들을 대한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했던 세자르 리츠의 왕가 서비스가 호텔에 접목된 형태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과거 왕/귀족의 하인들을 한 번 상상해보자. 그들은 자신이 모시는 사람과 관련 인물들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굳이 내가 누구이고, 어떤 용무로 이곳에 찾아왔는지 반복해서 말하지 않아도 된다. 하인들 사이에는 자신들만의 소식통이 있어서 그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그 취향을 일일이 맞춰 준다. 굳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크게 티 내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부분까지 케어 할 줄 아는 자가 베테랑이라는 걸 아는 것이다. 



(O-zone Bar)


리츠-칼튼은 이런 가치관을 이어받아 ‘미스틱 서비스’로 재현해냈다. 그들은 한 번 왔다 간 고객의 이름을 되묻는 일이 없다. 체크인 시 직원과 대화를 몇 번 나누면 얼마 뒤엔 지나가다 마주치는 직원들이 모두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년 전 필자가 리츠-칼튼 홍콩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호텔 내 오존 바를 가고 싶어 체크인 할 때 위치를 물었는데, 체크아웃 시 다른 직원이 오존바는 잘 다녀왔는지, 어땠는지 상냥하게 묻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당신이 과거 어떤 곳의 리츠-칼튼 호텔에 묵었는지부터 특별 요청사항, 불편을 얘기했던 부분까지 다 기록해 놓고 공유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다시 얘기하기 부담스러운 부분까지 미리 알고 대처해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과거의 직원들은 말과 말로 정보를 주고받았다면, IT 중심의 현대사회가 되면서 미스틱 서비스도 발전했다. 몇 번의 클릭으로 고객 정보를 알 수 있게 데이터 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미스틱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고객에 관한 정보가 1~10까지 다 저장돼 있다는데 필자는 어떻게 저장돼 있을지 심히 궁금한 순간이다(왜 걱정되지). 이렇게 저장된 데이터는 전 세계 리츠-칼튼에 공유된다. 회사 내엔 고객 정보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컴시어지(컴퓨터+컨시어지)가 따로 있을 정도라니 리츠-칼튼이 고객 정보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출처: 리츠-칼튼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직원들도 사람이다. 웬만한 자부심 아니고서야 매번 웃으면서 이런 서비스를 이행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리츠-칼튼은 ‘크레도(Credo)’라는 작은 카드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이 크레도 안에는 여러 국가의 언어로 호텔의 모토, 서비스 원칙 등이 쓰여 있다. 전 세계 리츠-칼튼인들이 심장 가장 가까이에 이 크레도를 간직하면서 서비스 정신과 자부심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크레도에 가장 크게 쓰인 이 문구. “We are Ladies and Gentlemen serving Ladies and Gentlemen(우리는 신사 숙녀 여러분을 섬기는 신사 숙녀이다)”. 과거 ‘손님은 왕이다’라는 모토 다음 주자로 선정된 모토인데 호텔이 직원들을 어떻게 여기는지가 잘 나타난다. ‘손님을 귀하게 여기는 당신들도 귀한 사람입니다’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만큼 직원들이 일류 호텔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귀한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는 굉장히 따뜻한 문구다. 물론 과거 모토가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허나 당초 의도와는 다르게 문자 그대로 자신을 왕처럼 대하라고 갑질하는 손님들이 많아지자 이런 모토로 변경했다고 한다(그러지 좀 말자…). 이외 ‘서비스 가치’라는 타이틀 아래 쓰인 12가지 항목은 아래와 같다. 


<나는 리츠칼튼 직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1. 나는 평생 돈독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리츠칼튼 고객을 창조한다.

2. 나는 표현하든 표현하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 고객의 소명과 욕구에 항상 대처한다.

3. 나는 우리 고객을 위해 독특하고 인상적이며, 개인적인 경험을 창조할 권한이 있다.

4. 나는 핵심 성공요소를 성취하고 커뮤니티 풋프린트를 수용하며 리츠칼튼 미스틱을 창조하는 과정에 내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이해한다.

5. 나는 리츠칼튼 경험을 혁신하고 개선할 기회를 지속적으로 모색한다.

*6. 나는 고객의 문제를 책임지고 즉시 해결한다.

7. 나는 팀워크와 탁월한 서비스를 지원하는 업무환경을 조성해 고객과 동료들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8. 나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

9. 나는 나와 관련된 업무의 계획 과정에 참여한다.

10. 나는 전문가다운 내 용모와 언어 그리고 행동에 자부심을 느낀다.

11. 나는 고객과 동료의 사생활과 안전 그리고 회사의 기밀정보와 자산을 보호한다.

12. 나는 탁월한 수준의 청결함을 유지하고 사고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할 책임이 있다.


*특히나 이런 항목을 실무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리츠-칼튼은 직원 개개인에게 재량권을 부여. 예컨대 1인당 하루 2천 달러 상당의 결재권을 주고 고객을 보필하는 경우에 한해 상사의 허락 없이 즉시 응대할 수 있다고 함 



리츠-칼튼에 간다면 바를 선점하라



(출처: 리츠-칼튼 리야드 공식 홈페이지)


리츠-칼튼에 간다면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서비스뿐만이 아니다. 그 어떤 호텔보다 화려하게 치장된 호텔의 인테리어를 두 눈 가득 담아와야 한다. ‘호텔계의 다이아몬드’로도 불릴 만큼 럭셔리한 리츠-칼튼. 과거 18C 근대 호텔의 모습을 재현하듯 걸린 거대한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금 마감 장식이 특징이다. 곳곳에서는 *왕관 쓴 사자상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로비를 가득 메운 생화들은 매일 신선한 것들로 갈아져 세팅된다. 호텔 한 켠을 차지한 앤티크 가구들은 옛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을 법한 우아하고 고전적인 것들로만 채워 넣는다. 


*리츠-칼튼 로고와도 일치. 사자는 부자(금융 후원자)를 상징, 왕관은 왕족을 상징함. 20세기 후반 세사르 리츠에 의해 디자인됨.



(리츠칼튼 상하이 푸둥과 오사카, 출처: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리츠-칼튼에 간다면 무조건 가야 할 곳은 따로 있다. 바로 바(Bar)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리츠-칼튼의 로비는 럭셔리하고 우아한 느낌으로 꾸며져 있지만 바 만큼은 다르다. 1900년대 초반 미국으로 건너와 호텔 사업을 넓혔던 당시 *금주령(1919년)에 목 말랐던 탓인지, 리츠-칼튼은 금주령이 사라진 이후에도 전 세계 호텔 곳곳에 특색 있는 바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물론 이거 필자의 추측이지만… 보스턴과 오사카에서는 옛 리츠-칼튼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빈티지 바를, 홍콩과 상하이에는 화려한 야경을 담아낸 감각적인 바를 경험할 수 있다. 당신이 언젠가 리츠-칼튼 호텔에 방문하게 된다면 드레스룸에서 가장 멋진 양복이나 칵테일 드레스를 차려입고 저녁쯤 바로 내려와 시그니처 칵테일 한잔을 해보길 바란다.


*금주령: 1919년 미국 내에서 발표된 금지법으로, 당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부족한 곡물의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추진된 금주법임. 당시 수많은 미국인이 이 법을 피해 간판도 없이 숨어있는 바를 찾아다니게 되면서 ‘스피크이지 바’라는 공간이 탄생하기도 함. 이후 스피크이지 바는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유명한 바 컨셉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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